사이트 내 전체검색

 

유물 · 사적

본문

 icon.gif순흥군지계 계송계열 19세손 (전북 순창)

back.png

 

서언(序言)

 

올해(辛丑年:2021年)는 지난해 2월경부터 시작된 코로나19의 丙亂(병란)이 계속되고 온 세상이 막대한 피해를 입어 전전 긍긍하고 있음에 안타까운 일입니다.

 

21년 4월 1일 현재 우리나라는 1,735명 死亡(사망)하고 지금도 코로나19의 감염자가 매일 평균 400~500명씩 발생하고 있으며 미국은 50만명 이상 사망자가 생겨서 이는 제1차 및 제2차 세계대전시 전사한 숫자보다 더 희생자가 발생 된 것이라고 하니 엄청난 역사적 사실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의 종말이 아닌 이상 너무 상심하지 맙시다. 태양은 오늘도 빛나고 내일도 빛날것입니다. 此際(차제)에 나 丁成(정성)이는 全州李氏(전주이씨) 完原君(완원군) 19世孫(손) 로서 4세 順興君(순흥군), 5세 繼宋(계송), 6세 尙溫(상온), 7세 益(익), 8세 漢奎(한규), 9세 整(정), 10세 宇燮(우섭), 11세 在哲(재철) 一名 仁宅(인택), 12세 良鎬(양호) 祖上(조상)님을 직계 계통으로 이후 7代 長孫(장손)으로 운명지어 태어났습니다. 제가 古稀(고희, 2002년)때 처음으로 여러 宗賢(종현)께 말씀드렸던 적이 있었는데 세월은 흘러 米壽(미수 88세)를 바라보는 老客(노객)이 되어 여러 가지 느끼는바있기에 이글을 드립니다.

 

존경하고 사랑스러운 일가 宗親(종친)여러분!

우리 집안은 代代(대대)로 山(산)을 숭상하고 孝道(효도)를 근본으로 삼아왔으며 저의 7대 조부님 대시는 諱(휘) 양호(11세)는 신분상 嘉善大夫(가선대부)이시고, 6대 조부님은 諱(휘) 樂邦(낙방)은 通政大夫(통정대부)이며 5대 조부님은 諱(휘) 殷根(은근)은 五衛將(오위장)으로서 당시왕의 호위 경비 책임의 소임을 맡으셨으며 4대 祖父님(고조부님)은 휘:禧薰(희훈)은 주위 사람들이 道士로 칭하였다는 내력으로 보아 점잖은 신사로 대우 받으셨으며 저의 증조부님 되시는 휘 學九(학구) 一名 允國(윤국)은 집안에서 전통적으로 先山에 대하여 깊은 고나심과 敬畏(경외)로 오늘날 우리 조상님 12위 분을 모시는 순창군 적성면 강경리 산 90번지(약 1,700평 내외)를 入手(입수)하시고 저의 선친이신 諱(휘) 炯銑(형선)씨께서 7세때(1914년) 어느 봄날 당신의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의 손을 잡고 標高(표고) 200M되는 先山(선산) 언덕에 올라와 “형선아” 이곳이 조상님의 유택(집)이 될 선산 땅이니 잘 가꾸어 명당이 되도록 조성 하기 바란다라고 하셨기에 평생 해외를 막론 언제 어디를 가시든 몽매간에도 항상 뇌리에서 잊지 않으시고 고향 땅 선산을 그리워하셨습니다.

1920년대에 이르러 저의 조부님 되시는 휘 泰雨(태우) 字:泰郁(태욱)께서 당시 친분이 있는 친구의 사업에 담보제공의 요청에 마지 못하여 부득이 당신의 재산인 논, 답 및 先山(3곳)소유권을 제공하였으나 그 사업이 실패로 끝나자 결과적으로 파산이 되어 온 집안이 생조의 위협을 받게 되었으며 저의 부친되시는 휘 炯銑(형선)씨는 당시 16세로서 서울 培材學堂(배재학당(중)2년생)으로 유학중 집안의 가세가 기울자 곧바로 고향에 귀향하고 얼마있다가 1923년 가을 秋收(추수)때 약간의 돈을 마련하고 청운의 뜻을 품고 이국 땅 일본 도쿄에 건너가서 가마구라 철도 학교에 입학하고 새벽에는 신문배달을 하며 오후에는 허드렛일을 하며 고학 생활을 하셨으니 그 苦生(고생)이 이루 말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옛말에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해(1923년) 가을경 일본 최대의 지진인 관동대진의 역경을 몸소 체험하셨으며 특히 조센징(조선사람)이 우물에 독약을 뿌렸다고 허위 학선전을 하였기에 수많은 조선인이 희생되었으며 그 악순환 속에서도 天佑神助(천우신조)로 생명을 유지하셨지에 선산에 대한 畏敬心(외경심)이 더욱 확대되었을 것입니다. 3년 후 1926년 봄에 저의 할아버지 되시는 휘 태욱씨는 火病(화병)으로 38세를 일기로 恨(한) 많은 生(생)을 마감하시고 유명을 달리하셨으며 우리 집안은 그야말로 풍지박산이 되고 온 집안 식구들은 먹고 살기위해 산지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으니 장손인 휘 炯銑(형선)씨는 당시 19세로서 형편이 어려워 당신의 아버지의 訃音(부음)을 듣고서도 귀국 할 수 가 없었으며 어린 동생 되시는 휘 炳銑(병선)씨는 11세, 그 밑에 휘 昌銑(창선)씨는 7세 그리고 막내동생되시는 京銑(경선)씨는 2세이었습니다. 어린 형제들이 일본 도쿄, 군산, 남원, 순창에서 분산되어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저의 先親(선친)되시는 휘 炯銑(형선)씨는 20대 청춘 시절을 만주, 러시아 등 이국땅 風物(풍물)을 맛보시고 당시 그래도 일본 도쿄가 좋으신지 되돌아오신 후 마도로스의 船上(선상)생활(2년간) 경험하셨고 동남아, 싱가폴, 인도의 붐베이 등 큰 항구를 경험 할 때마다 외국의 문화를 익히셨고 26세에 저의 어머님 되시는 諱(휘) 丁復男(정부남18歲)와 결혼하셨습니다. 그 당시 직업은 영업용 택시 운전을 하시며 저(정성)가 1934년에 태어나고 생후 6개월도 안되어 1935년도에 우리 3인 가족은 南洋群島(남양군도) 팔라우섬으로 이민하게 됩니다. 남양군도는 일본이 세계 제1차 대전에서 연합군의 승리로 참전의 대가로 취득한 영토이며 제 2차 세계 대전시 미국과의 대전에서 패망하게 되어 남양군도는 미국의 소유권으로 이전되었으며 지금은 팔라우공화국으로 독립국가가 되었습니다,

 

저의 선친은 팔라우제도 가라스마오 섬 빌리지에서 2층집(건평 150평정도)을 갖고 백화점(소형) 및 요리점을 운영하시면서(1935~1943,9년간) 어느 정도의 재산도 축적하게 되었으나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망(1945.8.15.)직전 전투요원이 아닌 비전투요원 가족을 본국으로 송환시킨 결과로 저의 가족은 건물 및 부동산을 그대로 두고 귀국하게 됩니다.(전쟁 종료 후 듣기로는 저의 집은 폭격으로 전파되었다고 함) 아버님(휘,형선씨)은 귀국하자마자 남의 손에 담보로 차입된 先山(3곳)에 담보금을 납부하고 소유권을 되찾았습니다.

 

사랑스러운 우리 집안 후손들이여!!

뿌리가 깊은 나무는 강한 바람에도 부러지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아니하고 공든탑은 쉽게 무너지지 아니하며 人傑(인걸)은 地靈(지령)이라고 했던가… !!!

 

東洋哲學的(동양철학적) 관점에서 論(논)할 때 陰陽 五行上(음양 오행상) 風水地理學的(풍수지리학적) 관점에서 논하건데 …

 

“특정한 땅의 살아있는 地氣(지기)가 後孫(후손)들에게 相生(상생)의 관계를 가질 때 조상님의 陰德(음덕)이 發福(발복)한다고 하였기에…” 우리 祖上님(조상님)은 먼 後代(후대)를 염두하시고 先山(선산)을 마련하시고 (명당)으로 조성하셨던 것으로 사료되므로 우리 후손들은 조상님의 고귀한 偉德을 欽慕하고 후손으로서 마땅히 도덕적으로도 남의 지탄을 받지않도록 처세하며 형제지간에 우애를 돈독히 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항상 베푸는 봉사정신으로 살아갈 때 우리 후손들은 福(복)을 받을 지어다.

 

바라옵건데 우리 집안의 7대 長孫(장손)으로서 부탁드리고자 함은 우리 후손들이 앞으로  派祖(파조) 完原君(완원군)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마장리와 ‘우리 집안 선대 조상님의 유택이 있는 순창군 팔덕면 서흥리(六代祖 父母님 묘소 순창군 적성면 지산리(五代 祖父님 묘소) 순창군 적성면 석산리(4代, 3代 祖父母님 및 父母님 묘소) 以上 3개 先山에 15위분 祖上님(조상님)을 모신 선산을 자주 참례하도록 부탁드리며, 혹시라도 그 근처에 가실 일이 있을 시에는 필히 경건한 마음으로 조상님에 대한 명복을 기원하여 주시기 바라옵고 끝으로 宗賢 여러분의 건강과 건승을 축원드립니다.

 

完原君 19 世孫 順興君系 石山支系 7代 長孫 丁成 드림 (2021년 4월 봄에)

 

 

※ 아래를 클릭하면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완원군파 순흥군 계보도

참고사항(족보 찾는 요령)

종산(宗山) 지도

 

you7q.jpg

 

you7d.jpg

전주이씨 완원군 파조묘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마장리)

 

you7e.jpg

 

you7f.jpg

참례기념사진

(6代 장손 一珩, 7代 장손 丁成 - 1981년 6월 중순)

 

you7g.jpg

서흥리 묘소 (6代 조부모님 - 1977년 촬영)

 

you7h.jpg

지산리 묘소 (5代 조부님)

 

you7i.jpg

선산 사진 - 순창군 적성면 석산리 묘소

(고조, 증조부님, 조모님 산소 - 선산에서 적성강을 바라보며 촬영함)

 

you7j.jpg

▲1996년 이전 장면                재사초 및 공수공사 완료 후 파란잔디가 살아난 장면(1997.9.5촬영)▲

 

 

you7k.jpg

선산사진 (2011.10.22)

(거북바위와 고조[4代 조부모]님 묘소)

 

you7l.jpg

증조부[3代 조부모]님 묘소와 셋째3代조부모님 묘소

 

you7m.jpg

위쪽에서 아래를 바라보며 찍은 장면

 

you7n.jpg

망주석 넘어 보이는 산이 섬진강 넘어 동계면 구미리 지역임

 

you7r.jpg

아래서 위로 찍은 장면

 

you7s.jpg

 

you7o.jpg

 

you7p.jpg